본문 바로가기

생각

지치고 싶지 않은데

무력에서 무기력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체감하면서도 이따금씩 날 보며 힘을 내주는 그에게 끝을 알 수 없는 희망을 얻고,

'내가 뭘 해야되지' 라는 일말의 고민 마저도 할 수 없을 때-

그 때 나는 발걸음을 멈춰버린다. 주저앉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 땐 정말 다른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난 네 곁에 있었다.

 

단순해지고 싶었고, 깊어지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는데

그래도 난 혼자 있겠다 얘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항상

혼자 있겠다고 얘기하는 쪽은 너였다.

 

네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도

넌 나를 살피지 않는 지도 모르겠다.

 

네 탓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너를 따라 나도 함께 감정이 예민해지고, 기복이 생기게 되어 힘겨운데

그런 나를. 너는 아는 걸까?

 

너도 혼자이고 싶은 순간에 내가 치댔을 수 있을 거다.

나의 존재가 필요한 것 보다, 나의 부재가 필요한 게 더 큰 순간도 분명 있었을 거다.

 

너도 나같은 감정을 느꼈는데, 얘기하지 않은 걸까?

결국은 배려 차원에서도 내가 진 걸까.

 

---------------------------------------------------

 

 

네가 본가에 내려갔을 때 /

 

넌 나와의 통화를 마치고 자살기도를 했다.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내가 얼마나 갈기갈기 찢겼었는지, 넌 모른다.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죄책감, 충격, 허탈함, 자괴감, 자기혐오감이 몰려들어왔는데

난 그저 널 안고 울기만 했다.

 

너 때문에 내 자신이 싫어졌다고 하면, 네 성격에 

혼자서 훅 떠나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난 또 한번 나의 일부분을 잃었고, 다쳤다.

 

 

 

네가 밀려온 우울에 괴로워할 때/

 

난 내 자신이 우울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너를 보면서 더더욱 느낀다. 

생각은 많지만, 빨리 받아들이고 정신승리를 해버리는 단순한 기질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네 앞에선 괜찮아야 했다.

네가 발 디디고 있는 내가 흔들리면, 넌 넘어질 게 분명하니까.

 

그래서 난 내가 괜찮지 않은 순간에도, 너를 위해 괜찮아야 했다. 결코 네 탓이 아니다. 널 사랑하니까, 당연한 것이었다.

내 선택이고, 백 번 물어도 난 똑같이 반복하겠지만-

지치는 건 사람의 매커니즘 상 당연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건, 어쨋든간 에너지를 쓰게 되니까.

 

 

 

그리고 어제, 몸이 좋지 않은 날 두고 네가 나가버렸을 때/

 

나는 쌓아뒀던 게 터졌던, 너는 밀려오는 우울에 힘들었던 게 겹쳤던 날.

 

그 날은

화가 날 정도로 네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보이지 않는 거야?

왜?

너에게 나는 대체 뭐야?

 

복도에 울리는 네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만히 서 있을 수도, 나갈 수도 없어

그냥 속만 찢어댔다.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절실했다.

 

그냥 같이 있으면 아무 생각 안 해도 되는 사람, 너보다 단순한 사람, 그냥 웃고만 있을 수 있는 사람.

 

 

지우, 채린이, 은주, 다연이 중에 고민하다가 채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밝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계속 참고있던 울음이 터졌다.

 

계속 무슨 일이냐고, 사람 때문이냐고 상황 때문이냐고 묻는 친구에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이것 저것,, 답답해서 라고 대충 둘러댔는데, 속에선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이 잔뜩 뒤엉킨다.

 

전남자친구 일이 있었을 때도 배달까지 시켜줘가며 날 위로해줬던 채린이였기에

더 이상 '사랑'이란 감정이 껴있는 일로 채린이에게 내 고민의 일부분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이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떻게 입 밖으로 낼 수 있겠는가. 

 

애인이 있다. 너희가 아는 사람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 애는 여자다. 그 애는 우울증에 고통받고 있다.

자해를 한다. 날 곁에 두고 죽음을 생각하기도 하는 애다. 견딜 수가 없다.

나도 변하는 것 같다. 그 애를 사랑하지만. 벅찰 때가 있다. 

 

 

 

나조차도 답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는데, 

대체 누구라고 이걸 나눠줄 수 있냐는 말이다.

 

 

그냥 평범한 커플들이 서운해하고 가끔 사소한 걸로 다투기도 하는 그런 것들이

우리에겐 너무나 힘들다.

 

내 한마디로 그 애의 손목에 한 줄기가 더 그어질까봐,

나는 너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너의 단어 하나하나에 벌벌 떤다.

 

 

날 곁에 두고 자꾸 내일 죽는다면, 내일 죽는다면- 글을 써내려가는 널 보며 무너지고

항상 네 컨디션을, 눈치를 살피게 되는 날 보며 난 다시 한 번 다치고

괜찮아보이는 날엔 경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언제 덜컥 혼자가 될 지 모르는 오늘을 살며 다시금 벌벌 떨다가도

 

나 덕분에 행복하다는 말 한마디에 주저앉아 엉엉 울게되는 나를

 

너는 아마도 모를 거다. 몰라야 한다.

 

 

알게 된다면, 네가 아주 조금이라도
나로인해 살고싶어지게 될까?

 

모르겠다.

 

 

그냥 오늘도

여전히 아프다.

 

 

솔직히 말하면 오늘은.

괜찮은

네가

필요한 것 같다.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등에 대하여  (0) 2020.12.26
서운함에 대하여  (0) 2020.12.18
아프다  (0) 2020.11.25
대충, 살려달라는-  (0) 2020.11.25
유치해지는 것에 대하여  (0) 2020.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