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잠든 널 쉽사리 깨울 수가 없었다.
약 30분 가량을 병든 강아지처럼 낑낑대다가
몇 시간 후면 네가 본가에 내려가야하는 일정이 있었기에, 그러니까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결국 조심스레 널 깨웠다.
평소처럼 알바 잘 다녀왔냐는, 수고했다는 소소한 대화들을 나누는데
네가 너무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거다.
저 책상 위엔 약이나 붕대같은 것들이 한가득인데 소매만 손 끝까지 길게 뺀 채로
마치 난 아무것도 모를 거라는 듯이 웃어주는 널 가만히 보고 있었던 그 때,
갑자기 속에서 뭔지 모를 뜨거운 것이
지글지글 끓는 느낌을 받았다.
뭔 일 없었어?
일? 무슨 일?
나한테 할 말 없어?
없는데? 뭐야 왜 그래-
조금은 떨리는 눈이었지만, 넌 분명히 아니라고 했다.
...
그 길로 벌떡 일어나 패딩, 가방 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는 날 붙잡으며 울기 시작했다.
나의 가족 사정을 다 알고있는 네가
내가 곧 올 것이라는 것까지 알고있었던 네가
'힘들다고 찾아왔지? 보여? 나도 힘들어. 그러니까 징징대지 마.'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 오기 몇 시간, 몇 분 전까지도 제 손목을 긋던 아이한테 내가 뭘 어떻게 기댈 수가 있겠어.
사랑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내가 번쩍 이성을 차린다.
그렇게 나는 너와 만난 날 이후 처음으로
너를 밀어내본다.
내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었다.
너는 그 날의 날 죄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 날의 내가 똑같이 무너져내릴 것을 알고 있다.
계속해서 날 끌어안는 너의 힘 덕분인지, 울다 지친 내 체력 덕분인지
어쨋든 그 날의 눈물바람은 마무리 되었다.
네가 본가에 돌아가고
나는 내 자취방으로 돌아와 곯아떨어졌던 탓에
연락이 안 된다며 네가 또 다시 불안해하던 에필로그가 있긴 하지만,
나도 잠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야간 알바 이후 바로 체력을 너무 뺏던 터라
그냥 아까의 일에 연장된 대화를 할 힘이 없었던 것 뿐이었다.
혼자 잔뜩 또 울고있었을 네가 걱정되고 미안해서
다음날 너의 본가 강원도까지 표를 끊고 달려가 너를 서울로 데리고 왔다.
절대로 후회하진 않지만,
내 인생 가장 무모한 짓 탑5 안에 들 만한 짓이었다..ㅎ
기차 떠나기 30분 전에 예매해서
숨통 끊어질 때 까지 뛰어 출발 1분 전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 기억 상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일이 터졌다.
네가 직접적으로 딱 잘라 얘기하진 않았지만,
이야기를 하는 너도, 듣는 나도 암묵적으로
너의 우울증이 가족으로부터 싹이 텄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네가 그 집으로 가려는 거다.
가면 힘들어하고, 또 상처받으면서도 자꾸만 그 집으로 이끌리는 거다.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그런 것들이 꽤나 답답했었다.
그러던 중 네가 또 다시 본가 쪽에서 우울이 도졌고,
나는 달래고 달래던 끝에
왜 자꾸 그 집으로 가려하는 거냐고 처음으로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게 화근이었다.
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너는
세상에
깡소주를 두 병이나 원샷하고
노트북으로 유서를 쓴 채
자살기도를 하려했던 거다.
그 날은,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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