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216일, 그리고 다시 D+1 (2)

그렇게 잠든 널 쉽사리 깨울 수가 없었다.

약 30분 가량을 병든 강아지처럼 낑낑대다가

몇 시간 후면 네가 본가에 내려가야하는 일정이 있었기에, 그러니까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결국 조심스레 널 깨웠다.

 

평소처럼 알바 잘 다녀왔냐는, 수고했다는 소소한 대화들을 나누는데

네가 너무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거다.

저 책상 위엔 약이나 붕대같은 것들이 한가득인데 소매만 손 끝까지 길게 뺀 채로

마치 난 아무것도 모를 거라는 듯이 웃어주는 널 가만히 보고 있었던 그 때,

갑자기 속에서 뭔지 모를 뜨거운 것이

지글지글 끓는 느낌을 받았다.

 

 

뭔 일 없었어?

일? 무슨 일?

나한테 할 말 없어?

없는데? 뭐야 왜 그래-

 

 

조금은 떨리는 눈이었지만, 넌 분명히 아니라고 했다.

 

...

 

그 길로 벌떡 일어나 패딩, 가방 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는 날 붙잡으며 울기 시작했다.

 

 

나의 가족 사정을 다 알고있는 네가

내가 곧 올 것이라는 것까지 알고있었던 네가

'힘들다고 찾아왔지? 보여? 나도 힘들어. 그러니까 징징대지 마.'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 오기 몇 시간, 몇 분 전까지도 제 손목을 긋던 아이한테 내가 뭘 어떻게 기댈 수가 있겠어.

사랑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내가 번쩍 이성을 차린다.

 

 

그렇게 나는 너와 만난 날 이후 처음으로

너를 밀어내본다.

 

내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었다.

 

 

너는 그 날의 날 죄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 날의 내가 똑같이 무너져내릴 것을 알고 있다.

 

계속해서 날 끌어안는 너의 힘 덕분인지, 울다 지친 내 체력 덕분인지

어쨋든 그 날의 눈물바람은 마무리 되었다.

 

 

네가 본가에 돌아가고

나는 내 자취방으로 돌아와 곯아떨어졌던 탓에

연락이 안 된다며 네가 또 다시 불안해하던 에필로그가 있긴 하지만,

나도 잠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야간 알바 이후 바로 체력을 너무 뺏던 터라

그냥 아까의 일에 연장된 대화를 할 힘이 없었던 것 뿐이었다.

혼자 잔뜩 또 울고있었을 네가 걱정되고 미안해서

다음날 너의 본가 강원도까지 표를 끊고 달려가 너를 서울로 데리고 왔다.

절대로 후회하진 않지만,

내 인생 가장 무모한 짓 탑5 안에 들 만한 짓이었다..ㅎ

기차 떠나기 30분 전에 예매해서

숨통 끊어질 때 까지 뛰어 출발 1분 전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 기억 상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일이 터졌다.

 

 

네가 직접적으로 딱 잘라 얘기하진 않았지만,

이야기를 하는 너도, 듣는 나도 암묵적으로

너의 우울증이 가족으로부터 싹이 텄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네가 그 집으로 가려는 거다.

가면 힘들어하고, 또 상처받으면서도 자꾸만 그 집으로 이끌리는 거다.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그런 것들이 꽤나 답답했었다.

 

 

그러던 중 네가 또 다시 본가 쪽에서 우울이 도졌고,

나는 달래고 달래던 끝에

왜 자꾸 그 집으로 가려하는 거냐고 처음으로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게 화근이었다.

 

 

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너는

세상에

깡소주를 두 병이나 원샷하고

노트북으로 유서를 쓴  채

자살기도를 하려했던 거다.

 

 

 

그 날은,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어짐.  (0) 2021.04.23
포항 여행  (0) 2021.04.19
216일, 그리고 다시 D+1 (1)  (0) 2021.04.15
나는 지금 왜 기분이 좋지 않은가  (0) 2021.04.12
거리  (2) 2021.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