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처음
자발적으로 거리를 둔 날.
친구들과 오랜만에 내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평소의 가벼운 컨디션을 되찾았다.
환기.
환기라는 표현이 딱 맞겠다.
가끔씩 네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가히 놀라울 때가 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그래
나 원래 이렇게 가볍고 편안한 사람이었지-
이제는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돌아올 수 있지만,
어쨋든 내 노력으로 난 괜찮아질 수 있는 사람이다.
몇 달 전부터 찾아온 음악작업에서의 슬럼프 또한
내가 많이 약해진 데 한 몫 했다.
'벽에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비로소 발전하고 있단 증거를 찾은 것이다' 라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계속 곤두서 있었던 맘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좋았던 대화, 좋았던 하루, 좋은 컨디션 끝에 너에게 연락이 온다.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어젯밤부터 네가 구덩이에 빠져 있는 걸 알고 있었다.
보고 싶다고, 안아달라는 톡이 온다.
하지만
오늘은- 너에게로 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었다. 나 또한 다운되어 있던 맘을 겨우 겨우 끌어올린 하루였기에
겨우 충전한 에너지를 바로 소진해버릴 수 없었다.
자해 라는 단어가 네 입에서 다시 나오고,
텍스트를 통해 너의 우울 또한 감지되지만-
나는 앞으로, 나답게 살며 너와 함께하기로 했다.
더 이상 내 자신을 잃을 수 없다.
항상 무언가를 더 해주고, 더 도와주려다 결국 둘 다 다쳤던 적이 너무나 많았기에
서로가 힘들 땐 각자의 시간을 갖도록 할 생각이다.
함께 살 집에서 네가 힘들어한다면 난 내 방에서 내 할 일에 몰두할 것이다.
물론 신경이야 많이 쓰이겠지.
내가 무신경해졌다고 생각하며, 서러워할 수도 있겠지.
다만
너에게 에너지를 쏟는 결과가 둘 다에게 마이너스일 거라면
에너지를 처음부터 쓰지 않는 게 답이다.
내가 소진되어 버리면
결국 한계치에서 난 널 원망하게 될 거다.
서로에게 파탄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거리' 를 선택하기로 한다.
오늘의 선택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난 너의 우울에 함께 잠식되지 않겠다.
그 동안, 널 일으키고 앞에서 끌어줘야 한다고만 생각 했는데
이젠 그냥 네가 스스로 일어설 때 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게 내가 다치지 않으면서, 내가 물들지 않으면서
네 곁에 있을 수 있는 방식이다.
나의 거리두기는-
아프지만, 서로가 덜 다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