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너와 함께 살겠다 약속한 이후로 참 다양한 하루들이 지나갔다.
정말 끝날 뻔했던 하루
네가 나에게 오열하며 울부짖었던 하루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하루
처음으로 자해를 했던 하루
네가 우리 집에서 뛰쳐나가 돌아갔던 하루
너무 아파 너를 놓을지 말지 진심으로 고민했던 하루..
그리고 오늘,
우리에겐
함께 살 집이 생겼다.
돌아올 곳이 생겼다.
이제 싸워도, 서로가 미워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벅찰 정도로 좋은 반면
서늘할 만큼 무섭기도 하다.
이제부턴 정말 정말 놓을 수 없게 되어버릴까봐.
놓고 싶지 않아지는 게 가장 좋겠지만, 언제나 비탈길을 걷고 있는 우리가
급하다면 급하다고 볼 수 있는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될 지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도망갈까 봐
서로를 아예 콱 정착시켜버리는 방법을 택한 지도 모르겠다.
돈이 걸리고, 계약이 걸리고, 법이 걸린 이 집을 통해
우리는 법에 묶인 안전하고 안정적인 관계임을 확인받고자
그래,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정면으로 회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네가 행복하다는데,
네가 살아난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는가
힘든 길일거란 게 훤히 보이지만,
난 앞으로 의도적으로라도
예상되는 힘듦을 어떻게든 피해볼 작정이다.
이미 너무 힘들었고, 너와 나는 지쳤다.
새로운 기분을 내기 위해 술자리를 옮기는 것 처럼,
우리도 새로운 시작, 새로운 기분내기를 하려는 거니까-
이제 맞부딪칠 필요보다, 조금씩 우회하는 방식이 필요한 시점이겠다.
매 순간이 어려운 네가 있어 오늘도 난 괜찮은 하루를 보낸다.
가끔 너 때문에 괜찮지 않은 날이 있을 거란 것도 안다.
당장만 생각하자.